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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7-20 09:49
네팔 여행기
 글쓴이 : 유재근           jaekeunu@hanmail.net          
 

인도 바라나시에서 네팔의 국경을 넘어 석가모니가 태어 난 룸비니로 가는 길은 마치 폴란드에서 슬로바키아로 가는 도중의 동구 알프스라 불리우는 아름다운 타트라 산맥의 절경과 비슷하였다.  

 

산 준령 중턱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네팔인 아저씨 하나가 동양적으로 생긴 나와 사진을 찍자면서 자신의 사진기를 자신의 아네에게 건네기에, 내 사진기로도 그녀에게 넘겨 주어 한 컷을 부탁하였다. 부부 사이에 한 아이가 보여 아들이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그래서 난 그 아이에게 1달라 지폐를 주었다. 

 

그런데 그 상점의 네팔어 전화 번호를 물어 보니, 아라비아 숫자가 아닌 네팔어 숫자가 아라비아 숫자와 비슷하면서도 전혀 뜻이 달랐다. 네팔어 0->0, 9->1, 8->4(네팔 숫자->아라비어 숫자)로 표기 되었다. 네팔어로 써있는 0.9% 술은 실제의 아라비어 숫자로는 0.1%였었다. 

 

부처님의 탄생지로 알려진 네팔의 룸비니에 입성하였다. 석가모니(釋迦牟尼, Sakyamuni)는 '사꺄족의 성자'란 뜻이다. 네팔의 룸비니에 우뚝 서있는 아쇼카석주는 아쇼카 대왕(BC268년~BC233년 즉위)이 만들었다. 이는 붓다가 열반한 후로 부터 불과 200년 후인  BC 245년경에  인도를 최초 통일한 아쇼카대왕이 만든 이 석주(The Ashokan Pillar)는  아소카 왕이 직접 부처님 탄생지를 참배하고 세운 것이다. 이 석주는 전체 높이 7.2m(땅속 3m), 지름 70Cm, 지상높이 4.11m이다. 

 

식당(☎056-599641)  Minsk 농도 0.1%      룸비니 매표소      룸비니 부처탄생지     아쇼카대왕 석주 

 

이 룸비니 동산에 부처가 태어 난곳에 백색 건물의 마야데비 사원을 지어졌다. 이 건물 안에서는 촬영이 금지 되어 있다. 붓다는 마야 욍비의 오른 쪽 옆구리에서 태어 났으며, 붓다는 태어 나자 마자 남북으로 일곱 발자국을 떼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흰 건물 앞에 연꽃 돌을 7개 만들어 비치해 놓았다. 

 

마야데비 사원 내부를 한바퀴 돌아 나가면 바로 구룡못이 나온다. 구룡못 뒤편에 1,000년이 넘은 보리수가 있어 많은 참배객들이 그 보리수 앞에서 기도를 올리기도 한다. 구룡못은 마야부인이 부처를 낳기 바로 직전 목욕한 곳이며 아기 부처를 낳고 나서 처음으로 세례를 하여 씻긴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룸비니에서 설산이 굽어 보이는 호수의 도시 포카라로 이동하였다. 포카라는 네팔의 수도인 인구밀도 500만 명인 카트만두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도시가 깨끗하고 외국인들도 많이 보이며 모든 여흥 문화를 즐길 수 있는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 찬 부자들의 도시이었다. Third Pole 호텔에서 숙박을 하였는데, 인터넷을 공짜로 쓸 수 있었고 인터넷도 빵빵 잘 터지는 편이었다.

 

6월 29일(일) 히말라야 전망대 사랑곳(Sarangkot)에서 일출을 감상하기 위하여 새벽 4시에 기상하였다. 사랑곳이란 산비탈을 오르기 위해 미니버스를 대동하였다.   

 

사랑곳에 올라 마차푸차레(6,993m)와 안나푸르나 3봉(7,555m, 1봉은 8,099m 임)의 준령을 배경으로 사진 한 컷을 찍었다. 세계적으로 8,000m 이상의 산은 14개 뿐이다. 14개 산 중 8개 산이 네팔에 있는데, 이 날 날씨가 좋아서 세계 7번 째로 높은 설산인 다울라기리(8,167m)산을 직접 내 눈으로 볼 수가 있었다. 

 

내가 세계적으로 높은 산을 본 것은 스위스 몽블랑 산이 4,008m였고, 미국에서 본 록키산 두번 째 높은 봉우리 약 4,660m가 전부였다. 허기사 일본 후지산이 3,776m이고 대만 옥산(신고산)이 3,952m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날씨가 좋아 직접 내 육안으로 8,000m 이상 되는 산을 처음으로 본 것이다.  

 

어째던 사랑곳에서 바라 보니 내 눈 왼쪽에 다울라기리(Dhaulagiri)산 중앙에 마차카푸레(Machapuchare), 오른 쪽에 안나푸르나(Annapurna)가 위치하고 있었다. Anna는 '주식(主食)'이란 뜻이고 'purna'는 '가득 차 있다'라는 뜻이다. '마차'는 'fish'를 의미하고 '푸차례'는 'tail'을 뜻한다. 네팔에서 히말라야산을 등정하는 코스는 104개 란다. 마차푸차례는 네팔인들이 신성시하여 사람들의 등산을 금지시키고 있단다. 

 

인도 라마신이 네팔 여자와 결혼했는데 인도와 네팔은 서로 상전이라고 생각한단다. 250년전 부터 인도에는 실크공장이 있어서 출가 시에는 모든 이가 실크 옷을 입고 떠났단다. 가로수 대부분이 망고인데 인도 보다 네팔이 먼저열매가 열린단다. 인도기사들이 네팔에 들어 가면 텃세가 심해 네팔 기사를 추가 보조로 써야 했다. 

 

어떤 이가 사랑 곳에서 안나푸르나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는데, 이는 우문에 불과할 뿐이다. 직접 거리의 측량 불가하고 어느 산행의 코스를 선택하여 아난푸르나 산기슭에 도착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간에 여러 산을 거쳐 아난푸르나에 닿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곳에서 해돋이 구경을 하고 호텔에 돌아 와 조식 후 폐와 호수에서 노를 젓는 보트를 타고 약 20분간 들어 갔다. 섬 안에 있는 작은 섬에 잠시 올라가 보았다. 그 섬 안에는 힌두교 여신을 모시는 사당이 있었다. 신도들은 신을 벋고 들어 가서 기도를 하여야 한다. 

 

마차푸차례(6,993m) 다울라기리(8,167m)  폐와호수의 나룻 배     섬에 올라 한 컷       섬 안(힌두사원) 

 

인도와 네팔은 거지가 많은데 인도 거지들은 찰거머리처럼 관광객에게 달라 붙어 잘 떨어지지 않고, 네팔 거지들은 서너번 'No!'를 외치면 대개 떨어져 나간다. 인도는 사람으로 북적이는 반면 네팔은 비교적 거리도 깨끗하고 사람도 덜 북적였다. 

 

네팔에서는 미국, 유럽, 한국 등으로 인력 수출이 많아 해외 이주 노동으로 외화를 벌어 들이고 있다. 특히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원이 제일 성업 중이란다. 네팔은 240년 동안 25명의 왕들이 통치한 왕정이 붕궤 되었지만, 지금은 정치인, 깡패, 공무원의 행패가 심해 일반인들은 오히려 왕정이 더 낫었다고 말한다. 

 

2002년 군 쿠테타 후 민주화가 되었지만 시민단체들이 힘을 못 쓰고 국가 행정이 순전히 돈과 빽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왕정시대에는 약한 자를 위한 법이 작용했었다며 현 정부를 원망하고 있었다.  

 

점심 식사 후 티벳 난민촌을 방문하였다. 네팔에는 11개의 티벳 난민촌이 있으며 이들은 티벳 불교를 숭상한다. 1952년 중국이 티벳을 점령하자 도망쳐 나온 피난민들이다. 네팔에서 포카라 티벳 난민촌이 두 번째로 크고 주로 카펫 공장에서 일하며 그들의 삶을 유지한다. 

 

이후 Devi라는 관광객이 폐와호수에서 파르디콜라 강물이 암벽 사이 동굴로 떨어지는 폭포의 토대가 무너져 빠져 죽는 바람에 그녀의 이름을 따라 이름이 지어진 데비 폭포와 굽테스와라 동굴을 관광하였다. 굽테스와라 동굴 안에는 시바 신상을 모셔놓은 조그만 사원이 있다. 동굴 길이는 약 3km에 달하고 여름에는 수량이 많아 이 동굴의 천장까지 물이 찬다고 한다. 사진 촬영은 금지 시키고 었있으며 동굴에 향내가 너무 진하였다.  

 

   티벳촌 정원          데빗 폭포          데빗 폭포 한 컷     쿱테스와라동굴 입구     시바 신상 등  

 

네팔의 마지막 이동지인 수도 카트만두로 이동하였다. 여태까지의 숙박은 1박씩이었으나 카트만두의 Manang 호텔에서는 2박을 한 후 다시 AI216편 항공기로 인도 델리공항에서 AI310편으로 홍콩을 겨유하여 인천 공항으로 들어 간다. 

 

카트만두(Kathmandu) 관광으로 보드나트(Boudhanath)사원, 스와얌부나트(Swayambunath0사원, 꾸마리 사원을 둘러 보았다. 보드나트사원은 동양 최대의 불교 석탑으로 티베트불교의 오랜 순례지이다. 최대의 불탑은 미얀마에 있고 보드나트의 것이 2번 째로 크다. 붓다가 고향을 찾아 가다가 쉬면서 기도한 곳에 세워진 불탑으로, 이 스투파(탐)를 한 바퀴 돌면 불경을 1,000번 읽는 것 만큼 공덕이 쌓인단다.  

 

스와얌부나트는 일명 야생 원숭이 집단 서식지로서 원숭이 사원으로 불린다. 5색 깃발(하늘, 땅, 바람, 해, 달)이 나붓끼고 있었다. 깃발(경전이 적혀 있음)을 룬다((rlung rta)라고 부르는데 깃발이 나붓길 때 마다 경전을 읽는 효과가 생긴단다. 

 

쿠마리사원(약 150년 됨)은 3층 건물에 쿠마리 화신으로 살아 있는 처녀 신이 사는 곳이다. 쿠마리사원 3층 건물 가운데 문으로 고개를 내민 현재 나이 9살의 쿠마리를 직접 쳐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엇으나 사진 촬영 금지로 사진을 찍지는 못 했다. 쿠마리는 어린 나이(4살~7살)에 선발 되어 초경이 시작되면 물러 나야 한다. 이는 티베트왕이 초경전 소녀를 강간하여 꿈자리로 잠을 못 이루다 쿠마리 여신을 모시고 평온을 찾았다고 한다. 

 

점심식사는 히말라야의 사나이 고 박영석 대장 부인이 운영하는 '빌라 에베레스트' 한국 식당에서 돼지 삼겹살과 한국에서 가져 간 소주팩으로 모처럼 맛 있는 식사를 하였다. 해외 여행 중에 음식이 잘 안 맞을 때는 고추장에 멸치가 제일 인 것 같다. 물론 컵라면이 좋기는 하지만 부피가 많이 나가기 때문이다. 

 

타멜 거리를 걸으면서 Patan 고대 왕국을 관광하였다. 카트만두 왕궁 박물관에는 왕이 생전에 사냥하는 모습, 사냥총, 사슴 등을 볼 수 있다. 1854년 네팔-티베트 전쟁사도 읽을 수 있다. 이 전쟁은 네팔이 승리하였단다. 왕이 코끼리에 오를 때 별도 사용하는 계단 사다리이며, 450년 된 9층 건물이라는데 아주 멀쩡하였다. 내부 시설은 비만 안 맞으면 약 1,500년 정도는 거뜬히 간단다. 

 

Patan 왕궁거리를 구경하고자 거리로 나서는데 엄청 난 비가 쏟아졌다. 6개월 만에 많이 내리는 비라는데, 카트만두 시내의 하수구가 모두 역류하는 바람에 길에 하숫물이 길에 내를 이루었다. 비를 피해서 처마에 있는데 개가 인파 사이를 파고 들며 피를 피한다. 비가 많이 쏟아지자 윗층 건물에서 비닐 쓰레기 봉투를 투강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비가 조금 잦아 들 때 한참 물길을 피해 간신히 호텔로 찾아 들어 왔다. 만약 인도인 가이드였다면 길을 찾는데 많이 헤메였을 것 같았다.   

 

비가 그친 저녁 호텔에서 목욕 후 옷을 갈아 입고 Manang호텔 주변에 있는 상가의 거리를 눈으로 쇼핑을 하며 활보를 하였다. 저녁 식사로는 반차가르 민속쇼를 관람하면서 네팔 전통 석식을 먹었다. 네팔 전통 막걸리를 계속 딸라 주어 석잔 정도 마셨더니 얼굴이 약간 불콰해졌다. 

 

   보드나트사원        스와얌부나트사원      쿠마리사원         비오는 타멜거리       파탄왕국 물폭탄

 

7월 1일(화) 이제는 한국으로 떠날 차례이다. 카투만두에서 국제선을 타고 인도 델리에서 홍콩 경유 인천행 비행기를 탈 차례이다. 귀국 시 비행기 비상구쪽 자리를 노렸으나 카투만두에서 가이드가 인도인에서 네팔인으로 바뀌는 바람에 큰 도움을 받지 못 했다.   

 

네팔에서 커피를 마시는 역사는 약 15년 밖에 안 되었다. 커피는 히말라야산 2,000n~3,000m 사이 황토 흙에서 잘 되는데, 히말라야 커피는 1kg에 24불 정도 한다. 네팔은 자동차 기름을 인도에 의지하며 3일치만 비치하고 있다. 네팔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들면 인도가 이 기름 공급을 정치적으로 흥정하며 많이 악용한단다.      

 

장례문화로 힌두교도는 1년 내내 고기를 먹지 않으며, 몽골족은 우리네 처럼 2박 3일간 고기도 먹고 고스톱도 친단다. 조장(鳥葬)은 죄 많이 지은 사람은 새가 시신을 먹지 않으며 병 걸린 사람은 조장을 못 시킨다고 한다. 

 

힌두교도들이 미간에 찍는 점은 제 3의 지혜의 눈을 의미한다. 아내가 인도 염색약 헤나(100kg에 4불)를 많이 사오라고 하여 20여 개를 사왔다. 인도, 네팔 여행 중에 인도나 네팔 루피를 하나도 바꾸지 않고 미 달러나 신용카드로 모두 해결하였다. 인도/네팔 루피는 가지고 있어도 쓸 데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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