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에는 작년에 기획하고도 다녀 오지 못 한 인도, 네팔 패케지 여행을 기필코 다녀 오기로 마음 먹고 었다. 그래서 여행사에 설령 룸 메이트가 없을 지라도 나 홀로 싱글 룸 차지를 내고 여행 가겠다고 하였다. 대신에 비상구쪽의 좌석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미 달러 값도 싼 바람에 다행히 저렴한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작년과 달리 의외로 홀로 출발하는 남자가 6명, 4가족 한 팀, 부부 2팀, 모녀 한 팀, 남자 동료 한 팀으로 총 18명이었다. 다행히 여행사에서 AI316편 30F로 다리를 뻗을 수 있는 비상구쪽 좌석에 앉아 편한 여행길에 오를 수 있었다.
홍콩을 경유 인도 델리(Delhi)공항에 도착하여 현지 비자신청에 들어 갔다. 비자 담당관 2명이 컴퓨터도 없이 수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 여행사가 적어 준 형식이 맞지 않는다하여 새 양식에 모두 옮겨 적고 있자니 엄청 짜증이 났다. 인도 비자를 얻기 위해서는, 1980년대 돌아 가신 부모 성함, 배우자 성함 등을 일일이 적고 현 주소도 기록하게 되어 있었다. 그렇게 상세 정보가 필요한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
그 곳에서 80세인 내 룸메이트란 분을 멀리서 알아 보았는데, 그는 조급증에 분노를 쉽게 폭팔하는 영감님이었다. 이 분과의 스트레스 가득한 여행기는 별도로 다루었다.
어렵사리 2시간 반에 걸쳐 18명의 인도 비자 허가를 받았다. 비자로 받은 돈은 관리 2명이 일하는 책상서랍 대신에 각기 자신의 호주머니에 집어 넣는 광경을 우리는 매우 경이로운 모습으로 바라 보았다.
담당 현지 가이드 이름은 Satyender, Singh인데 인도인들은 '자신의 이름+아버지 이름-성(姓)'으로 부르기에, 나는 그를 그냥 Mr.Singh이라고 호칭하였다. 첫 날은 델리 근처 Clarks Inn에 머물렀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인도문, 대통령궁, 쿠툽 미나르 관광에 나섰다.
인도는 35개 주 16개의 말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인도인도 현지 인도 가이드를 채용하여야 편한 여행이 된단다. 일반인들은 힌두어를 사용하며 사무실에서는 영어를 주로 쓴다고 한다. 자동차의 백미러는 옵션이라 뒤를 볼 수 없는 차가 많아 크락션이 백미러를 대신하는 것 같았다. 크락션을 안 누르면 앞차의 예고 없는 차선 변경에 사고가 나기 쉽다. 그래서 버스 기사는 반드시 조수를 데리고 다녀야 하며 조수 7년 경력이 넘어야 그제사 운전대를 잡을 수 있단다. 간단한 차 수리는 기본에 속한다.
인도의 인사는 합장하면서 '나마스떼'라고 말하며, 인도의 일반 가정 집에는 화장실이 없다. 그래서 버스 안에서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가이드에게 주먹 쥔 손으로 새끼 손가락만 펴보여 주면 된다. 한국의 여자 친구를 의미할 때의 손가락 표현 모습과 똑같다.
인도 경찰은 고 수입을 받으며 뇌물을 주면 빨리 달릴 수가 있다. 인도는 부패하여 많은 곳에서 뇌물이 통한다. 그래서 돼는 것이 없다고 말하나 돈으로 안 되는 것도 없다고 말한다.
아침 출근길이 버스, 승용차, 오토바이, 오토릭사, 소 등이 뒤 얽혀 혼잡하다. 2개 차선이 있어도 양쪽 방면에서 2개 선을 모두 이용하기에 빠른 속력은 불가하다. 모든 차들이 반대 방향에서 달려 오는 차와 충돌할 듯이 마주 보고 달려 오다가 충돌 직전 자기 차선으로 빠지니 마치 치킨 게임을 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소는 우유를 먹기 위한 수단으로 키우며 길에 방임된 소도 주인이 있고 흰소 보다는 검은 소가 우유 생산량이 높아 더 비싼 편이다. 검은 소가 더위에 더 약해 나무 그늘에 많이 모여 있으며 날씨가 더우면 검은 소가 더 많이 죽는단다.
인도인들은 짜이란 차를 많이 마시는데 짜이는 홍차, 우유, 설탕을 섞어 만들고 주로 아침 대용으로 밥 대신에 짜이를 주로 마신다. 그러니 우리네 식으로는 하루 두 끼를 먹고 사는 셈이다.





AI317기종 인도비자 발급소 창 밖 인도문 대통령궁 쿠툽미나르
6월 23일(월) 커다란 관광버스를 타고 가면서, 1차 대전에 참가하여 죽은 인도 군인들의 죽음을 기리는 위령탑으로 돌로 만든 인도문 사진을 찍었다. 차 안에서 500개의 방과 사무실로 이루어진 대통령궁을 카메라에 담았다. 쿠툽미나르를 구경하기 위하여 버스에서 내려서 걸어서 구경하였다. 이슬람교의 터키인 쿠툽이 인도 북부를 점령한 후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3세기에 만들었단다.
쿠툽은 72.5m의 5층탑으로 기단에는 이슬람교 경전의 글을 새겨 넣었다. 유네스코 문화 유산에 등재되었고 주위에 여러 회교 사원들이 보였다. 특히, 주위에 찬드라 쿠툽 2세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높이 7.2m 쇠기둥은 1500년이 지났음에도 현재까지 녹이 슬지 않고 있는 모습이 매우 경이롭다.
델리 국내 공항에서 국내선 AI612편을 이용하여 18세기에 만들어진 분홍색(가슴 색 :마음 속의 의미)의 계획 도시로 핑크시티로 불리는 자이푸르로 이동하였다.인도인 가이드의 '삥끄(pink) 시티라는 발음이 특이하게 다가 온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인도에는 먼지가 많아 설사하기 쉬운데 망고, 바나나를 먹으면 지사제 역할을 한단다.
먼저 암베르 성 관광에 나섰다. Jaipur Amber성은 붉은 사암과 흰대리석을 사용하여 힌두와 이슬람 건축이 잘 되어 있는 큰 성의 건축물이다. 건물 꼭데기에 힌두교 사원은 빨간 기를 걸었고 이슬람교 사원은 흰색+녹색 기를 건단다.
암베르성에서 내 룸 메이트 노인이 길을 잃는 바람에 오후 일정에 있던 시티 팔레스, 타지마할, 잔타르만타르(천문대) 일정이 어긋나 일찍암치 다음 일정을 접고 조금 일찍 호텔로 돌아왔다. 못 다한 일정은 내일 오전 중으로 소화할 예정이다.
24일(화) 이른 아침 라자스탄주 자이푸르에 있는 일명 천문대인 잔타르만타르를 관광하였다. 천문학 관측소로 16개의 관측장비를 가지고 잇으며, 30M 높이로 세계에서 제일 큰 해시계이다. 햇빛 그림자(햇빛 그림자 위치시간+29분)로 정확한 시간 파악이 가능했었다.
코끼리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도 가끔 보이는데, 코끼리는 보리수 나뭇닢만 먹고 통상 버스 한 대 값에 해당된단다. 가끔씩 낙타도 눈에 띈다. 낙타로 1km 가는데 미화 20불을 지불하여야 한다. 거리 찦차 위에도 사람이 탄 모습이 기이하게 여겨 진다.





암베르성 잔타르만타르 하와마할 시티팰레스 고속도로 풍경
하와마할은 일명 바람의 궁전으로 불리는 5층 건물로, 1799년 왕족의 여인들이 일상생활과 시내의 행열을 지켜보기 위해 지어졌다. 이 건축물은 자이푸르 시내 중앙의 다른 건물들처럼 핑크빛으로 칠해졌다.
시티팰리스는 1700년대 자이 싱 2세게가 세운 궁전으로 아직도 그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1951년 부터 일반인들도 관람 할 수 있게 되었다. 무기 갤러리에는 전쟁 그림, 칼과 칼집, 총들, 방패, 철갑옷, 활, 화살통, 창 등이 진열 되어 있었으나 촬영은 금지를 시켜 놓았다,
자이푸르에서 전용버스를 타고 약 5시간 이상을 아그라로 이동하여 세계문화유산들인 타지마할과 아그라성을 관람하였다. 아그라는 무굴제국의 수도이고 아그라성은 샤 자한이 막내아들에 의해 왕위를 박탈 당한 후 갇혀 지낸 곳이다. 아그라성에서 자무나 강 건너로 타지마할이 바로 보인다.
타지마할(Taj Mahal)은 '마할의 왕관'이란 뜻으로 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세계 제 7대 불가사의로 손꼽힌다. 하얀 대리석 사원인데 왕이 한 여인의 왕비를 향한 간곡한 기념비로서 중앙 높이는 58m, 4귀퉁이에 42m 첨탑이다.
6월 25일(수) 아침 인도에서 제일 빠르다는 특급열차를 아그라역에서 타고 잔시역으로 출발하였다. 특급열차인데도 예정시간 보다 1시간 반이나 지나서 도착하였다. 아그라 역 안에 먼지 바람이 많이 일어 마스크를 써야 했다. 그리고 아그라 기차역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자가로 마스크를 쓴 내 모습을 찍어 보았다.





아그라성 타지마할1 타지마할2 아그라 기차역 아그라 역 안
6월 25일(수) 잔시역에 12:45에 도착하였다. 열차 안에서 인도인과 대화를 갖고 사진도 함께 한 방 찍고 싶었지만 C8 1~11번 좌석이 모두 우리 일행의 지정 좌석이라 현지인과 대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인도는 카스트 제도 때문에 계급적으로 굴래가 씌워져 있었다. 카스트 계급은 남자에 맞추는데, 그래서 그 신분에 안 맞춰 결혼하는 사람은 5%에 불과하다. 돈에 앞서 이들은 성(姓)과 땅을 매우 중요시 여긴다. 인도 어린이들은 자신이 학교에 들어 갈 때면 자신의 계급을 알게 된단다.
인도 여행 중 소 한 마리가 교통 사고로 죽었는데 1,000 달러 정도의 벌금이 나온단단다. 그 시체는 주로 하층 4번 째 계급에서 처리를 한다. 힌두교도는 소고기를 안 먹고 돼지고기를 먹으며, 이슬람교도는 돼지를 안 먹고 소고기를 먹는다. 지나교도는 소고기, 돼지고기를 모두 먹는다.
에로틱 사원이 위치한 카주라호로 발걸음을 옮겼다. 카주라호는 인도 마디아프라데세시 주에 위치한 작은 호수를 끼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중세기 힌두교와 지나교 사원들이 서 있는 찬델라 왕조 때의 수도였던 곳이기도 하다. 에로틱 힌두 사원은 성행위를 촉진시켜 인구를 늘리려는 의도와 남녀의 성적인 결합을 통해 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 간다는 신앙에서 만들어 졌다고 한다. 힌두 에로틱 사원에는 각종 남녀 사랑 행위, 수간 등을 조각으로 보여 주고 있다.
6월26일(목) 전용 버스로 힌두교, 불교, 잔교의 성지인 바라나시로 약 10시간 동안 이동하였다. 특히 저녁 바라나시는 힌두교의 7개 성지 가운데 최고로 꼽히며 인파가 엄청나다. 저녁 식사전 이곳에서 자전거 릭사를 타고 구시가지를 질러 갠지스강까지 갔다. 저녁 그 곳에서 약 1시간 동안 거행하는 인도 푸자 기도 의식을 먼 거리에서 구경하였다.





에로틱 힌두 사원 성애 장면들 말과 수간 바라나시 릭사여행 힌두 푸자기도 의식
6월 27일(금) 어제 저녁에 다녀 온 갠지스강에 가서 보트를 타고 일출 구경을 하기 위해 아침 4시에 기상하였다. 바라나시 번화가를 아침에 걸으니 소똥들이 군데군데 보이고 이른 아침 부터 거지와 싱갱이를 벌여야 했다. 싱그러운 아침에 각지에서 성스러운 강인 갠지스강에 목욕하러 가는 힌두교도들이 많이 보인다.
부처님이 열반 후 나온 사리를 4군데로 나누어 보관하다가 그 중 한 개를 갠지강에 버려서 인도인들은 갠지스 강물을 매우 신성시 여긴다.
남인도 사람들도 이 곳 북인도의 갠지스강으로 와서 머리를 깍고 목욕을 한 후 시바신께 기도를 올린단다. 치솔질은 치약 대신에 님나무 가지를 잘라 칫솔과 치약을 대신하였다. 갠지스강에서 짜이 차를 공짜로 마셔 보고 보트에 올라 일출을 구경한 후 갠지스강 화장터 모습을 관광하면서 사진 몇 컷을 찎었다. 이 곳에서 화장하는 시신 6구를 보았고 화장하는 이들의 계급은 높고 동시에 부자란다.
일명 녹야원으로 불리는 사르나트 공원을 관광하였다. 그후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후 수행자 시절 따르던 5명의 제자들에게 설법한 곳에 세워진 아소칸왕이 건립한 다멕 스투파(탑)을 관광하였다. 아래에서 11.2m까지는 돌로 쌓아 만드었고 그 위로는 벽돌을 쌓아 만들었다.





목욕과 칫솔질 갠지스강 일출 갠지스강 화장터 사르나트(녹야원) 다멕 스푸파(탑)
인도 여행을 모두 마치고 네팔 룸비니 국경을 통과하며 비자 수속을 밟았다. 인도 국경수비대에서 관광객을 일일이 내리게 하여 여권 사진과 실물을 대조 하였다. (이어 네팔 여행기를 올릴 예정이다)